공생인간

우리말에 '말귀를 알아듣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참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귀를 알아듣다는 건 단순히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겁니다. 즉, 같은 나라 말을 쓰고 있더라도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는 많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도 제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가끔씩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가게되면 택시기사분에게 "충무로역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20번 중 1번 정도는 택시가 다른 길로 가는 겁니다. "아저씨,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충정로역 가신다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상황이 생긴 거죠.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대로 듣기 때문입니다. 언어학에서도 실제 이런 이유 때문에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특히 말하기와 듣기의 경우 더 그렇습니다.

말하기, 듣기는 쓰기나 읽기와는 다르게 실시간으로(real-time)으로 이뤄집니다. 집중력을 잠깐 잃으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놓치기가 십상이죠. 이 때문에 우리 뇌에서는 말하기와 듣기의 언어 처리 과정에서 '추측' 즉 'guessing' 전략을 사용합니다. 상대방이 대략 이런 이야기를 할 것으로 추측을 한 상태에서 듣고 또 이를 해석하는 거죠. 추측 전략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의사소통에서 언어 처리 과정을 원활히 하는 장점은 있지만 10번에 1,2번은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서론이 길어졌네요. 오늘 갑자기 '말귀'라는 주제를 들고 나온 건 최근 제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오해가 생긴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잘못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말하는 사람 역시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야하는 데 다른 사람들 모두 자신의 말을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오해가 생긴 거죠. 다시 이 일을 놓고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다보니 "아, 저 사람의 의도는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다 이해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듣는 사람 역시 말하는 사람의 주장을 자신의 생각대로 '추측'해서 해석하다보니 벌어진 일일 겁니다.

다시 한번 언어의 중요성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공생인간